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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e(온드)는 프랑스어로 파도, 물결, 파형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저의 글, 음악, 춤 등으로 사람들에게 파도처럼 다가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틀에 갇힌 것 보다는 야생의 자유로움을 사랑합니다. 한국의 홈스쿨러이며 교육 혁명을 원하고 끄적끄적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며 가사 쓰기, 글 쓰기,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연기, 연극, 뮤지컬도 좋아합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들을 씁니다. Z세대로서 느끼는 글들이 많을 것 입니다. 온드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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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들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확립하자.
나의 의견과 견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상처주는 말에 상처를 내어주지 말자.
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굳건한 멘탈이 결국 나를 일으킬 것이다.
멘탈이라는 것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무처럼 단단히 서 있는 것,
삶의 불확실성을 견디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남들이 다 가지 않는 길을 가지만,
그렇기에 더 특별하고 빛이 날 거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기에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밟히지 않은 길을 향해서
나는 기꺼이 발을 뻗으리라.
그리고 만들어진 적 없는 길을
만들어 동행들까지 만드리라.

삶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비교는 끝이없고 불행을 낳는다.
나는 남들과 똑같을 수 없다.
나는 그냥 나고,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나로서 존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교대상이 아닌 것이다.

굳건히 자라 나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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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는데,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챕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한국을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의 한국의 상황을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먼저 접하고 여러 책들과 뉴스들로 익혔을 뿐이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터였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는데,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챕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한국을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의 한국의 상황을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먼저 접하고 여러 책들과 뉴스들로 익혔을 뿐이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터였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 남한은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산업적으로 성장기였을 때 태어난 우리 부모 세대들은 지금보다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많았으며, 취직도 보다 잘 되었다. 그렇기에 아마 그들이 우리를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세대 간의 불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산 세대와 우리가 사는 세대는 확실히 다른 세대고, 다른 시대니까.

 

 우리나라가 급성장을 했기 때문일까, 한국하면 외국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빨리빨리'가 크다. 외국인 패널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빨리빨리'문화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 문화는 과정을 무시하기 쉬우며, 그 안의 여유는 사치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냥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 바란다. (물론, 급성장 시대에는 이 문화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게 미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지나든지 이미 몇 년이나 지났고, 그때의 아이들과 현대의 아이들은 굉장히 다른 교육을 받고 있으며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2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3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나이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워왔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뭐, 다들 알겠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학생 때는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대학 가면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애 낳아 학교 보내고, 애 학교 보내면 취직시키고, 좋은 곳 취직시키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마치 누가 정해놓은 규칙처럼 선명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규칙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자란 환경부터 생김새까지, 흥미부터 재능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이런 규칙에 얽매여 있고 억압돼 있을까? 왜 우리 스스로를 이런 틀에 맞추지 못해 안달일까?

 

 그리고 그 틀에 맞추지 않은 사람들을 실패자로 보며 혀를 차게 되는 사회가 되었을까? 초집단주의 성향인 문화 때문일까? 아니면 급성장으로 자신의 삶이 맞다고 정의 내린 기성세대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 때문일까? 대체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당장 나의 자매나 형제를 봐도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성격, 성향, 관심사까지 모두 다르다. 가족부터 친구까지 다른 구석들 투성이인데, 이런 70억 인구가 과연 같은 사람이 한쌍이라도 존재할까? 도플갱어가 실제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우리는 같아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하며 사는 것일까?

 

 옆 나라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또 '오지랖'을 가졌다. 그건 아마 관심과 친절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한 한국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리라. 누군가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이 정당하다는 듯 변명한다. 거슬린다는 둥, 왜 남들 가만히 있는데 너만 그러냐는 둥, 나대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으라는 둥으로 말이다. 교실 환경만 봐도 질문하는 아이가 있으면 다들 눈치주기 바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이었지만, 깎이고 도려져 같은 모양이 돼버리고 만다. 개성없고 형태 없는 그냥 동그라미가 되고, 그 동그라미가 되면 축하를 받는 기이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실이 분통하고 피곤한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해외를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인간이랄까.

 

 우리는 조금의 방황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찾아갈 방황이 필요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볼 방황의 시간이 필요하다. 방황한다는 것은 찾는다는 것이 있다는 말이고, 찾아낼 것이라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뜻이고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자신의 꿈의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금기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돼버리고 만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방황을 허락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방황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청춘들이 만들어낼 하모니는 정말이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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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 대해서 이번 팬데믹 기간 동안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된 게 한 가지 있다. 나는 춤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야 뭐 원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더 확실해진 것 같다. 나는 중학교 때 거의 춤밖에 없었다. 춤 하나에 울고 웃었고 그게 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고 입시 앞에 낮아진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입시를 포기했었는데 그 여파가 굉장히 컸다. 나는 대단히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그때 대신 기댔던 게 연기고 연극, 뮤지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양한 예술에 대해 견문을 넓힌 것이 아주 잘한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모든 게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지금 와서 그 학교는 사실 비리가 많이 있었고, 내가 갔었어도 그 돈만큼의 대접을 못 받았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마냥 안 좋은 일이나 좋은 일은 없구나 싶었다. 항상 모든 일에는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일도 공존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공존하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다양했다. 가수, 배우, 래퍼, CEO, 뮤지컬 배우, 작곡가, 프로듀서, 작사가, 아이돌, 댄서, 안무가, 작가, 강연자 등. 거의 음악 분야고 예술 분야 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다양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10대를 보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꿈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그 알 수 없는 형태에 다가가기 위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물론, 모든 것들을 다 버려버리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놓아버린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순간들은 모두 내 꿈들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20대의 시작점을 마주하고 있지만 크게 두렵거나 하지는 않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삶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갈 것이며, 나에 대해 배워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를 것이다. 내 가슴을 따를 것이다. 가슴이 텅 비어버린 그런 삶은 결코 살지 않으리라 약속하고 맹세하리라. 

 

 아, 나의 어린 시절의 마음과 동심을 절대 잊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어렵다고 해도 해보고 싶다.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왠지 가슴 한편에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꿈꾸는 어른이고 싶다. 내가 아직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면 꿈꾸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나 자신이 되려고 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내가 되면 되는 것이다. 내 한 평생을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 그대로를 사랑해줄 것이며 믿어주고 싶다.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고 싶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나는 어느새 질풍노도의 10대를 거쳐 스무 살이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와 변함없지만 많이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따라 나는 성장했고 세상을 보는 눈도 더욱 커지고 있다. 비록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은 멈춰버렸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또 내가 살아갈 시간들을 내 색깔대로 휙휙 칠해가고 있다. 내 그림의 완성작이 어떤 그림일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내 마음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쨌든 나의 기록이고 발자국이고 평생토록 저장돼 있는 재생목록일 테니까. 나는 댄서가 될 것이고, 작곡가가 될 것이고, 작사가가 될 것이고,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가 될 것이다. 나는 굳이 꿈을 직업으로만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굳이 직업에 한정해서 꿈을 꿀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그냥 내가 쓰는 글들과 멜로디로 사람들이 용기를 얻거나, 위로를 받거나, 꿈을 꾸거나, 잠시 몽상에 빠졌으면 좋겠다. 춤으로도. 그냥 사람들이 너무 바쁜 현실을 잠시 잊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다. 그게 내 꿈이다. 

 

 이 꿈은 형태만 변함이 있지 몇 년째 변함없는 내 꿈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루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냐는 것이다. 어차피 꿈이란 것은 이뤄 버리고 나면 사라져 버릴 환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환상을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꿈을 위해 내 삶을 바칠 것이고, 그것을 이뤘다면 또 거기에서 새로운 꿈을 찾을 것이다. 그저 그 과정이 사랑스럽고 인생답기에 기꺼이 해보겠다는 말이다. 나의 자유로움을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느끼고 그런, 조금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에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랑과 신념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런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나는 바랄 뿐이다.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주는 것만큼,뜻깊은 일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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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학년 때 적성 검사했던 기록을 발견했다. '1.공간지능, 2.언어지능. 3.자기파악능력, 4.음악능력, 5.신체운동능력, 6.수리능력, 7.이해능력'이었다. 그때 엄마가 해둔 기록들을 보니, 내가 13살 때도 확실히 음악과 예술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확실히 예술에 소질이 있었고 좋아했다. 그때 장래 희망란을 보니, 가수랑 배우였다. 지금도 뭐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음악과 예술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달해주고 싶고 나를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 몇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여태껏 그래왔으니까. 앞으로도 이 마음, 변함 없었으면 좋겠다. 

 

 난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도서관에 가면 계속 앉아 책을 읽고는 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매번 졸랐다. 그래서 엄마가 피곤하신 날에는, 카세트 테이프로 책을 듣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직접 읽어주는 책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힙합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참으로 좋아했다. 힙합은 가사에서 스토리텔링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이라 생각했고, 또 그만큼 가사가 중요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사가 시같고, 시가 가사같은 게 너무 좋았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사춘기 시절, 중학생 시절에는 에픽하이 타블로의 열꽃 앨범을 정말 좋아했고 많이 들었다. 에픽하이 신발장 앨범의 '막을 올리며'를 들으며 하굣길 버스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던 때가 떠오른다. 나는 중학교를 통학을 했는데, 하굣길에는 거의 매번 버스를 타고 하교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음악을 듣고 창 밖을 보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별 걱정없을 수 있었으니까.

 

 난 또래에 비해 내 미래와 진로에 대한 생각이 많았고 또 거기에 맞는 노력들을 해왔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계획들 하나하나에 강박이 있었어서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다. 지금은 그 강박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내 계획들에 있어서 유해지고 있는 중이다. 어렸을 때는 슬럼프에 대처하는 능력이 되게 없었다. 그래서 다 놓아버리고 후회하고 이런 류였는데, 이제는 조금은 대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럴 때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고 해야하나. 너무 나를 몰아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봤자 남는 건 없으니까. 삶은 비전을 그린대로 비슷하게 흘러갈 수는 있으나, 내가 바란 그대로 똑같이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비전은 내 방향을 잡기 위함이지, 강박에 사로잡히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다. 

 

 요즘 가끔 나는 내 능력에 대해 의심을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무 쓸모 없음을 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좋아했고 또 소질이 있었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또 누군가에게는 갖고 싶은 무언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더 존중하고 함께 이 삶이라는 것을 재밌게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요즘, 나는 그래도 내 삶을 규칙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려 한다. 시간 단위 시간표도 쓰려고 하고, 또 그에 맞춰 살아간다. (물론 주말에는 가족들과 있어서 조금 풀어지기는 하지만, 이런 시간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 공부와 음악 공부,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하고 있다. 집에 있는동안 살도 불어서 춤과 스트레칭도 계속 하려는 중이다. 나름대로 나의 펜데믹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솔직히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난 알바도 열심히 해서 해외도 가고 여러것들을 체험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으로서 그저 지금에 맞춰 또 긍정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할 뿐이다. 더 높이 날아오를 날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자. 

 

 무튼, 나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 음악과 연이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내겠지. 그럼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오늘 하루를 내 미래처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꿈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하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아, 물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되려 이른 성공은 독이 되니까. 아무쪼록 내게 주어진 이 고마운 삶들과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고, 나로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여기서 2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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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상을 보고 정말 너무 공감이 갔다. 맞다. 자식이 자신의 소유물인 줄 아는 부모가 세상에 너무나 많다. 아니, 어쩌면 그 '세상'에서 한국 부모들이 90%일지도 모르겠다. 내 부모님, 특히 엄마는 자신이 그랬다고 인정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날 자신에게 투영시키던 순간들이 꽤나 많았다. 자신이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인지 나에게서 그 콤플렉스를 충족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나, 대학을 안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너는 어떻게든 대학을 갈 애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는 그냥 집이 거의 전쟁터였다. 오히려 좋은 대학을 나온 우리 아빠는 대학에 대한 압박을 전혀 주지 않았다. 되려 네가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대학이라고 말했고 4년 동안 4000만 원 들일 가치가 없다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왜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식에게 투영하느냐? 그것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자식이 자신과는 다른 개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갖게 하게 한다거나 하는 굉장히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내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라길 원했다. 내가 그동안 반항을 하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해온 편이기에 그래도 지켜진 것이지, 엄마 하라는 대로 했다면 난 지금쯤 대학에 가거나 공무원 준비를 하기 바빴겠지.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가장 되기 싫다. 부모님은 그 직업이 가장 안정적이며 좋은 직업이라고 세뇌를 시켰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부모님 시대 때나 그랬겠지, 우리 시대는 다르다. 자신이 살아오고 본 세상을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세상에 자식을 집어넣으려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주제가 나오면 흔히 부모들은 '싫으면 나가.' 라던가, '너 이제 지원 없어.' 같은 말을 던진다. 엄연한 권력 남용이다. 자신이 독립적 개체로 키우려 노력을 하지 않았으면서 '그럼 나가던가.'라는 말을 하는 것은 결국, '나갈 거 아니면 내 말에 순종해.'라는 말과 다른 게 무엇이라는 말인가. 

 

 부모님께는 미안하지만(사실 이건 내 인생이기에 미안하지는 않다.), 나는 절대 부모님처럼 살기는 싫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라도 결혼 안 할거고, 그냥 세상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 살아주기 싫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나는 내 인생이 있는데. 내 인생이 아주 운 좋게 주어졌는데, 그걸 왜 남의 인생을 흉내 내는 데 써야 하는가? 나는 스스로 부딪혀보며 나만의 방식을 찾고 싶다. 

 

 

1. 부모는 우리를 곱게 키우고 싶어한다.

2. 부모와 자식은 그릇이 다르다.

3. 나는 내 인생을 살기 위해 태어났다.

 

-김수영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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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포스팅에서는 일상에서의 언컨택트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챕터는 '비즈니스'에서의 언컨택트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가장 많았던 챕터이기도 하다. 재택근무,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 대기업의 주주총회 전자투표, 새로운 교육 시장, 홈스쿨링&무크, 언컨택트 시대의 대학의 위기, 드라이브 스루, 쇼핑, 공장 자동화, 자율주행 자동차, 원격 의료 등을 다루지만, 나는 거기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언컨택트 시대의 대학과 홈스쿨링&무크, 그리고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에 대해 더 많이 다뤄보도록 하겠다. 

 

 우선, 재택근무는 현재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는 펜데믹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들이다. 이제는 스터디나 회의도 온라인으로 하고 회사 업무까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코로나로 인해서 이 방법이 대중화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이 방법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곳이 꽤나 많았다. 온라인으로만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가 실제로 존재했고 심지어 잘 되기까지 했다. 또한,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안다는 미래형 대학교 '미네르바 대학'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캠퍼스가 없이 4년 동안 7개국을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그곳도 컨택트가 아닌 언컨택트와 컨택트가 결합된 공간이 된 것이다. 이처럼, 언컨택트는 사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 차츰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재택근무 흡수력이 여태껏 저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마주 보며 회의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야근하고, 회식하며 친밀하게 어울려 일하는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조직 문화에선 재택근무를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봤다, 자신들이 계속 해왔던 방식이 익숙하고 검증된 것이다 보니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원격근무와 재택근무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음에도 기업들이 적용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다.

관성을 깨는 건 늘 어렵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란 말은 구호로 쓰긴 좋지만, 막상 실행으로 하기엔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 대기업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변화, 혁신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조직 문화를 바꾸는 작업에선 소극적이었고, 기존 직원들의 저항도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놀라운 트리거가 되었다."


 앞으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국의 기업들이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없을 테니까. 앞으로는 홀로그램으로도 회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시공간적 제약을 없애고 굳이 회사에 출퇴근하지 않고도 충분히 집에서 근무가 가능해질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앞으로 이런 방식을 더 선호할 것이며 그들은 미래 기술에 기성세대보다 쉽게 발맞춰 갈 것이다. (사실 시대를 맞춰 살아가는 것은 나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오랜 것을 버릴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한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격근무를 위해서는 사실 시간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관리 또한 필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고립감이나 외로움에 빠지면 사실 회복되기 힘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멘털 관리와 시간 관리를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 앞으로 더 성장할 키워드다. 2020년 기준으로 1170명의 직원이 70여 개국에서 일하는 기업 '오토매틱'은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모이고, 나머지는 각자가 선택한 공간에서 일한다. 홈오피스를 빌리는 비용, 카페에서 일할 때 마시는 음료까지 회사에서 모두 지원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운영을 해도 대형 사무실을 운영하는 비용보다 적다고 하니, 이만한 가성비가 또 없는 것 같다. 직원들은 해변에서든, 카페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사무실 없이 원격근무만 해도 비즈니스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굳이 옛날 방식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에서는 '방콕, 호치민의 어느 카페나 공유 오피스에 앉아서도 실리콘밸리 회사의 직원일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참 재밌고 좋았다. 원격근무로 인해 출퇴근 시간의 낭비도 없애고(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거리가 매우 크다. 그리고 서울은 집값이 비싸 집을 구하기도 어렵다.), 대면 스트레스도 줄이고, 사무실 공간 비용도 줄이고, 도시의 밀집 화도 완화되고, 좋은 점들이 꽤나 많다. 물론, 좋은 점만 있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늘어날 것이고, 또 그에 맞는 다양한 비즈니스들도 생겨날 것이다. 

 

 또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집과 돈, 인맥과 친구, 소비와 교육까지 모든 면에서의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 옥스퍼드 마틴스쿨의 교수가 발표한 '고용의 미래'에 따르면, 저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것은 내가 책 '에이트'에서 보았던 직업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었다. 전문직들의 위기가 닥쳐오고 로봇에 대처되갈 것이며, 매뉴얼화시킬 수 있는 업무나 조직에 기댄 일자리들은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 말이다. 반면에 개인의 역량이 요구되는 크리에이터들의 몫은 더 늘어날 것이다. 로케이션 인디펜던트와 디지털 노마드에 유리하기도 하고 말이다. 여태껏 기성세대가 바라보았던 좋은 직업이 과연 우리 시대에 좋은 직업일까? 아니, 존재하기나 할까?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한 번 깊게 해봐야 하는 시기가 왔다. 

 


 "세계적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가 쓴 [코끼리와 벼룩]에선 코끼리에 비유되는 대기업 직장에서, 벼룩에 비유되는 프리랜서 중심으로 고용 문화가 재편되는 것을 다룬다. 대규모 조직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이미 2001년에 한 것이다....

우리가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집을 사서 정착했던 건 우리의 본능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고용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사회적 욕망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평생직장을 원치도 않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 국가적 장벽도 사라지고, 언어적, 문화적 장벽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면 이곳이 지금 서울인지, 뉴욕인지, 치앙마인지, 사무실 책상인지, 카페인지, 달리는 기차 안인지 구분도 안 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우린 전 세계 어디든 접속하고, 전 세계 누구 와든 연결된다. 언컨택트의 시대는 오히려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기회와 컨택트 하게 만든다.'

-언컨택트 123page-


  이처럼 사회는 변하고 시대도 변한다. 나는 그 시대의 벽동 위에 서 있다. 그럼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무조건적으로 기성세대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고 또 그렇다고 그들의 조언을 모두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고, 나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대규모의 기업이 없이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프리랜서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미리 준비해두자. 우선,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시간관리, 자기 관리 능력, 멘털 관리 능력은 기본 중 기본이다. 운동으로 그 멘털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체력과 건강이 없으면 그 무엇도 수행해낼 수 없으니까. 

 

 그리고 필요한 능력은 영어 실력이다. 영어 하나로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 회화와 스피킹, 라이팅, 리딩 실력 모두 길러두자. 영어는 그냥 평생 가져가야 하는 과제다. 언어는 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그냥 꾸준히 습관화 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 기술에 늘 관심을 가지며 예민하게 반응하자.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나도 변화해야 한다. 내 실력이 나의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잊지 말고 내 실력 기름을 1순위도 두자. 이제 더 이상 인맥이나 학력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난 나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코로나 19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들은 전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온라인 수업을 경험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참 많이도 바꾸어놓은 것 같다. 물론, 좋지 않게 바꾸어놓은 것들도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순기능도 언제나 그랬듯이 존재한다. 사람들과 너무 많이 부딪히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한국인들의 삶에 조금은 여유가 생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양면성인 것 같다.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분명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나는 이 책에 [홈스쿨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가 바로 그 홈스쿨링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학교 교육에 문제점과 의문을 갖고 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고등학교 시절의 반을 보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너무나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어른들은 날 걱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안쓰럽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난 상관없다.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면 끝나는 일이니까.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사는 사람을 볼 때 조금의 불안감과 질투를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솔직히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전부고 그것이 맞다고 믿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의견에 그렇게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는 내 인생을 나에게 맡기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 살아가면 될 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말에 내 삶을 버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홈스쿨링에 관한 주제는 여느 주제들보다 정말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영국, 미국, 핀란드는 홈스쿨링이 합법이며 활성화 돼있다. 하지만 독일, 스웨덴처럼 불법인 나라도 존재한다. 국가별 시각차가 존재하지만, 나는 그냥 홈스쿨링을 하고 싶어서 자퇴했다기보다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해주지 않아 제대로 된 교육을 찾아 떠난 것이다. 물론, 교육방식의 변화는 시스템적인 문제며 구조적 문제이기에 한 번에 바뀌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익숙한 관성이 지닌 저항력 때문에 잘 바뀌진 않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 반드시. 정보 전달과 습득은 기계가 더 잘한다. 컴퓨터가 훨씬 인간보다 그 능력은 뛰어나다. 질문과 토론, 비판과 문제 제기 등을 얼마나 잘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미래 역량인데, 그것에 대한 교육은 시스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무크(MOOC)로 외국에서는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사이트가 많이 존재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물론이고 해외의 유명한 대학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원하면 돈을 지불하고 수료증이나 학위까지 딸 수 있다. 이름바 평생 교육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평생 배우고 공부하며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야 하는 시대다. 우리나라도 뭐 사이버 대학이나 k-mooc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활성화 됐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이런 시스템들을 잘 이용해 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다.

 

 언컨택트 시대에 대학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현재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오프라인 수업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등록금을 반환해 달라고 시위까지 하려 나섰을까. 이러다보니 휴학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늘고, 시간을 손해보는 학생들 또한 늘어났다. 외국으로 유학을 간 학생들은 주거난까지 겪게 된다. 사실 나도 이번년도에 워킹홀리데이나 여행을 염두해두고 있었는데 갔으면 큰 일날 뻔 했다.

 


"가뜩이나 대학 산업은 쇠퇴하던 중이었다. 국내에서도 향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거나(그보다 더 많이 사라진다는 우울한 예측도 있다.) 하는 얘긴 꽤 오래 전부터 나왔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대학을 1088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1109년에 설립된 파리 대학, 1167년에 설립된 옥스퍼드대학과 1209년에 설립된 케임브리지대학 등, 800~900년 전부터 존재하던 대학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동안 변화를 하긴 했지만, 과거 대학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대학 교육에 대한 무용론도 21세기 들어 계속 제기된다. 특히 IT산업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더더욱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늘었다."

 

"...2018년 애플이 미국에서 고용한 직원의 절반 정도가 4년제 학위가 없다는 얘기를 했다. 4년이란 시간과 비싼 등록금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의 돈과 그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질을 갖추는 데 투자 하는 게 낫다는 의미인 것이다."

-언컨택트 155page-


 요즘 시대에 대학을 가는 것은 학위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학문 연구가 아니라 완전히 취업이나 사회 진출을 위해 자격증처럼 필요해지게 되버렸다. 하지만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은 특정 직업에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책은 말한다. 물론, 교육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저 대학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그저 자격증처럼 여겨지게 되는 대학 학위가 과연 4000만원의 돈과 4년의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기성 세대에게는 그저 대학 졸업장으로 평생 떵떵거릴 수 있고 취업에 써먹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다 다르다. 계속 교육받고 성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나는 이 책 덕분에 내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를 믿고, 계속 하루하루 꽉 채워가며 살아야겠다. 이런 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Posted by 온드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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