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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e(온드)는 프랑스어로 파도, 물결, 파형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저의 글, 음악, 춤 등으로 사람들에게 파도처럼 다가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틀에 갇힌 것 보다는 야생의 자유로움을 사랑합니다. 한국의 홈스쿨러이며 교육 혁명을 원하고 끄적끄적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며 가사 쓰기, 글 쓰기,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연기, 연극, 뮤지컬도 좋아합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들을 씁니다. Z세대로서 느끼는 글들이 많을 것 입니다. 온드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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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 목록에 오르는 작가인 동시에 인터뷰나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은둔을 자처하는 작가. 체코 출신으로 �

book.naver.com

1. 이 책은 니체의 영원 회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데, 나는 거기에서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영겁의 시간동안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내가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일회성이며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큰 무게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현재 내가 가벼움인지 무거움인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가벼움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종교도 없고 사후세계를 믿지도 않으며, 그것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 끝나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행동 하나하나에 무거움을 더하면 난 편하게 살지 못할 것 같다. 그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 내가 작은 나쁜 짓을 하는 것조차 눈을 부릅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인데 어떻게 좋은 행동만 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상당히 경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은 가벼움이나 무거움 두개로 구별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인생의 회귀와 존재 의미에 대해 한 번 쯤 철학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소통과 인간 존재의 상관관계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소통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 인간은 소통을 갈구하며, 자신의 좋은 점들을 나누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을 흡수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sns나 유튜브가 인기 있는 것도, 아니 그냥 tv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는 산물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관점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소통이 정말 소통인지, 아니면 그저 남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는 마음에,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만들어낸 또 다른 나와의 소통인지 말이다. 현대인들, 특히 gz세대는 sns에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나 그런 곳은 대부분 현실과는 다른, 현실에서도 굉장히 하이라이트인 부분만 편집해서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과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은 소통이 필요한 동물이지만, 현재 sns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통은 뭔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채로 서로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보며 의미없는 말들이나 짓껄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일 뿐이라 생각한다. 

 

 

3. 고전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터라, 이 작품을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 작품 자체가 쉬운 작품은 아니라 그런지, 시점이 자꾸 바뀌어서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점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옛날 소설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여성 혐오적인 표현들이 많았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2020년을 살아가는 Z세대로서는 상당히 불편함을 많이 느꼈는데, 이건 시대적 배경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신경 안쓰고 읽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심한 구절이 나오면 한 박자 쉬고 읽어야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이라면 한 번 주의를 하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4.

키치

[ Kitsch음성듣기 ]

키치라는 용어는 그것이 지칭하는 개념처럼 매우 근대적인 것이다. 키치는 1860년대에서 1870년대 사이에 뮌헨의 화가와 화상의 속어로 사용되었으며, 하찮은 예술품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910년대에 이르면 느슨하고 널리 유통되는 호칭으로서 국제적인 용어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키치 [Kitsch]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이 소설 속에서는 키치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단어가 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라고 한다. 나는 사실 이 단어를 원래 알고 있었다. 바로 뮤지컬 엘리자벳의 키치라는 넘버에서부터 알게 됐었는데, 그때는 사실 키치라는 뜻을 잘 모르고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키치는 하찮은 예술품을 가르킨다고 지식백과에 나와있는데, 사실 19세기의 대중 문화 예술이나 대중 그림들을 뜻했다고 한다. 그때는 뭐 대중적인 것이 천박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해석이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키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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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나는 이 책을 예전부터 한 번쯤은 읽고 싶었다. 그래서 6월의 독서 책을 코스모스로 정했고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그런데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이렇게 7월 중반이 돼서야 다 읽고 독서록을 쓰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잘 못 읽은 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600~700 페이지에 이르는 아주 두꺼운 책이라 뭐 어쩔 수 없었다. 내 평생 읽은 책들 중 가장 두꺼운 책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아주 멀리, 또는 아주 깊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리고 또 두꺼운 만큼,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얻어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저자가 얼마나 코스모스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진심인지 그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갈수록 더 처절히 느껴진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1934~1996년 동안 살았으며,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여러 유명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NASA에 자문 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내 생각보다 많은 책들을 낸 작가였다. 나는 그의 지적 욕구를, 배우려는 마음을 정말 존경하고 사랑한다. 사실, 나는 이 분이 원래 살아계신 줄 알았다. 코스모스라는 책은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고 천문학 관련 서적이라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 였지 그렇게 크게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시작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저자를 찾아보았고,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지구를 떠난 사람의 생각과 열정을 글을 통해 읽는다는 사실은 늘 신비하고 묘한 경험이다. 그는 이미 세상에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존재한다. 책 속에서는 그가 너무나 크게 내 마음에 우주에 대해 여러 말들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코스모스로, 우리의 고향인 별로 돌아간 칼 세이건이지만, 이 책 안에서는 살아 숨 쉬며 내게 많은 말들을 속삭여주었다. 특히나, 나는 책을 읽으며 감탄한 것 중 하나가 그의 문장력이다. 그는 어려울 것만 같은 천체 물리학과 천문학 박사이지만, 그의 문장력은 가히 소설 작가만큼이나 대단하다. 그의 문장을 읽으며 소름이 돋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의 문장을 읽으며 책을 내려놓고는 멍하니 있던 적도 있었고, 격하게 공감하면서 대화한 적도 있었다. 만약 누군가 보고 있었더라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문장력은 시인과도 같았고, 소설 작가와도 같았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힘이 문장들 속에 있었다.

 

 이 책은 총 13개의 챕터로 진행이 된다.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2. 우주 생명의 푸가

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4. 천국과 지옥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7. 밤하늘의 등뼈

8.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9. 별들의 삶과 죽음

10. 영원의 벼랑 끝

11. 미래로 띄운 편지

12. 은하 대백과 사전

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이렇게 13개의 챕터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각 챕터마다 내용도 다를뿐더러, 시간 순으로 전개되지도 않는다. 나는 이 글에서는 챕터 하나하나의 느낌을 서술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책을 읽은 느낌과 간단한 줄거리를 설명하려고 한다. 챕터별로는 다른 게시물로 할 예정이다. 지금은 1회 차로 다 읽은 것이므로 그때의 느낌과, 다시 하나하나 챕터를 채워나가면서 적는 느낌은 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사실 내용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고 여러 내용들이 나오지만), 우리는 코스모스에 살고 있으며 이 코스모스 속 아주 작은 점인 지구에서 우리는 다른 것을 틀리다고 여기며 서로를 밀어낼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이름으로 우주에 대해 더 알아가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전하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13 챕터에서는 핵전쟁에 대한 칼 세이건의 생각들을 다루는데, 거기서 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또 그 다른 것을 배척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사실 다를 것도 크게 없는 것이, 우리는 모두 다 인간이다. [인류]라는 거대한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서로를 밀어내고 배척한다. 여기서 나는 생산적인 비판 능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유 없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싫어하는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류의 발전에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다. 인류라는 이름 아래, 뭉쳐서, 우주에 대해 더 알아가고 우리와는 다른 생물이 우주에 거주하는지, 어떤 행성들이 있는지 함께 알아가는 편이 훨씬 지구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다른 외계 생명체의 발견이 그저 외계인의 발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칼 세이건의 말이 난 굉장히 인상 깊었다. 외계의 발견은 우리 인간의 존재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커다란 기회라는 것에서 말이다. 인간은 그동안 우리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참 여러 곳에 의지해왔다. 종교부터 시작해서 철학과 인문학, 또는 많은 미신들까지 말이다. 하지만 정말 우주에 우리 인간 말고 다른 존재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인간만이 최고가 아님을 인정하고 우주적 가치관으로 인생을, 사람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날이 오기를 굉장히 고대하고 있다.

 

 난 인간만이 최고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 여겨진다. 물론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인간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만이 고유하고 인간만이 대단한 생물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많다. 뭐, 그건 그들의 가치관이라 건드릴 생각은 없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바다에 깊게 진출하기 전, 고래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는데, 난 거기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사실 고래들은 아주 먼 거리에서도 자신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은 200년 전에 거의 1만 킬로미터의 거리에서도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1980년대 기준이니 더 짧아졌을 수도 있다.)에는 수백 킬로미터에서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역시나 인간의 증기선 개발과 여러 배들의 진출, 잠수함 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대한 소음들이 고래들 사이의 대화와 노래를 방해해온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소통 방법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소통 방식을 대체 인간이 뭐라고 방해하는지, 고래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특히나 특정 국가들에서 예전에 고래 사냥을 그렇게 했던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뉴스에도 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참 못난 인간들이 무고한 동물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안쓰럽다. 저들도 같은 지구를 살아가고 있는 생물체들이다. 물론 생태계적인 것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필요 이상의 사냥과 필요 이상의 환경 파괴가 과연 인간에게 좋게 돌아올 수 있을까? 전 지구적으로 고민되고 더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이라 생각한다. 

 

 코스모스를 읽으며 생각보다 다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의미에 갖는 의미들에 대하여, [인류]라는 키워드에 대하여, 우리의 고향인 코스모스에 대하여 말이다. 아직 다시 보고 기억하고 기록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긴 책을 다 읽었다는 것에 굉장히 뿌듯함을 느낀다! 집에 많이 있다보니 책도 많이 읽게 되고 생각보다 순기능들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무쪼록 이 사태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다큐와 함께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치겠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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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는데,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챕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한국을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의 한국의 상황을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먼저 접하고 여러 책들과 뉴스들로 익혔을 뿐이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터였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는데,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챕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한국을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의 한국의 상황을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먼저 접하고 여러 책들과 뉴스들로 익혔을 뿐이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터였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 남한은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산업적으로 성장기였을 때 태어난 우리 부모 세대들은 지금보다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많았으며, 취직도 보다 잘 되었다. 그렇기에 아마 그들이 우리를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세대 간의 불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산 세대와 우리가 사는 세대는 확실히 다른 세대고, 다른 시대니까.

 

 우리나라가 급성장을 했기 때문일까, 한국하면 외국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빨리빨리'가 크다. 외국인 패널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빨리빨리'문화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 문화는 과정을 무시하기 쉬우며, 그 안의 여유는 사치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냥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 바란다. (물론, 급성장 시대에는 이 문화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게 미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지나든지 이미 몇 년이나 지났고, 그때의 아이들과 현대의 아이들은 굉장히 다른 교육을 받고 있으며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2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3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나이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워왔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뭐, 다들 알겠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학생 때는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대학 가면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애 낳아 학교 보내고, 애 학교 보내면 취직시키고, 좋은 곳 취직시키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마치 누가 정해놓은 규칙처럼 선명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규칙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자란 환경부터 생김새까지, 흥미부터 재능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이런 규칙에 얽매여 있고 억압돼 있을까? 왜 우리 스스로를 이런 틀에 맞추지 못해 안달일까?

 

 그리고 그 틀에 맞추지 않은 사람들을 실패자로 보며 혀를 차게 되는 사회가 되었을까? 초집단주의 성향인 문화 때문일까? 아니면 급성장으로 자신의 삶이 맞다고 정의 내린 기성세대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 때문일까? 대체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당장 나의 자매나 형제를 봐도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성격, 성향, 관심사까지 모두 다르다. 가족부터 친구까지 다른 구석들 투성이인데, 이런 70억 인구가 과연 같은 사람이 한쌍이라도 존재할까? 도플갱어가 실제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우리는 같아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하며 사는 것일까?

 

 옆 나라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또 '오지랖'을 가졌다. 그건 아마 관심과 친절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한 한국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리라. 누군가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이 정당하다는 듯 변명한다. 거슬린다는 둥, 왜 남들 가만히 있는데 너만 그러냐는 둥, 나대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으라는 둥으로 말이다. 교실 환경만 봐도 질문하는 아이가 있으면 다들 눈치주기 바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이었지만, 깎이고 도려져 같은 모양이 돼버리고 만다. 개성없고 형태 없는 그냥 동그라미가 되고, 그 동그라미가 되면 축하를 받는 기이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실이 분통하고 피곤한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해외를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인간이랄까.

 

 우리는 조금의 방황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찾아갈 방황이 필요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볼 방황의 시간이 필요하다. 방황한다는 것은 찾는다는 것이 있다는 말이고, 찾아낼 것이라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뜻이고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자신의 꿈의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금기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돼버리고 만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방황을 허락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방황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청춘들이 만들어낼 하모니는 정말이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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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컨택트 책의 마지막 챕터, ⓷. 공동체에서의 언컨택트다. 저자는 공동체 속 언컨택트를 관찰하며 글을 써 내려간다. 마지막 챕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느슨한 연대]라는 개념이었다. 현대인들은 관계 스트레스에 매우 지쳐있다. 매일 오프라인 회사나 학교에 가서 사람들을 상대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늘 관계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편리한 단절은 꿈꾼다. 회사가 끝나면 집에 가길 원하고 노래방 3차까지 가는 회식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급 주택이나 아파트에서는 이웃이라는 커뮤니티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느슨한 연대를 위해서라고 한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런 느슨한 연대 말이다. 요즘은 결혼이나 가족에 대한 개념도 많이 달라지고 있어서, 꼭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적다. 그래서인지 셰어하우스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들은 계속해서 생길 것이며, 우리는 거기서 느슨한 연대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언컨택트 사회가 된다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단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며 정치적 동물이다. 함께 존재해야 하는 존재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의 이런 본능이 언컨택트 사회를 불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지구 반대편의 친구를 만나는 것은 이제는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제 현대인들은 타인에게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대면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어떻게 살길 원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물론 언컨택트와 초연결 시대가 초래되면서 사생활 침해의 문제 또한 부각될 수 있다. 사생활들의 데이터가 축적이 되고 그것을 이용하는 기업들에 대가를 요구하기도 할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구글의 알고리즘 시스템이다. 우리는 구글을 사용하며 꾸준히 그들에게 데이터를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 또한 나의 개인정보 기도 하다. 이런 자잘하고 큰 문제들이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기에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것이며 거기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창의력이 중요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으로, 집단 지성과 협동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양극화와 디스토피아에 대해 말하며 끝이 난다. 언컨택트 사회가 되며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계층과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며, IT기술을 악용하여 통제하면 그것은 전체주의적 정부에 억압받고 통제되는 사회인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리고 견제와 투명성이 언컨택트 사회에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며 책은 끝이 난다. 그렇다. 변화는 마냥 좋은 것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산업 혁명도 기술의 발전과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와 반대로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를 초래했다.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그 문제들은 윤리적인 문제들이 많은 것 같다. 사람에 대해, 더 알아가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말이다. 

 

 무튼,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고 말이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또 그것만큼 재미없는 인생이 있을까 싶다. 위기를 기회로 볼 줄 아는 능력을 갖되,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자세를 갖자.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가자. 그리고 그 배운 것들을 공유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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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포스팅에서는 일상에서의 언컨택트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챕터는 '비즈니스'에서의 언컨택트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가장 많았던 챕터이기도 하다. 재택근무,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 대기업의 주주총회 전자투표, 새로운 교육 시장, 홈스쿨링&무크, 언컨택트 시대의 대학의 위기, 드라이브 스루, 쇼핑, 공장 자동화, 자율주행 자동차, 원격 의료 등을 다루지만, 나는 거기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언컨택트 시대의 대학과 홈스쿨링&무크, 그리고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에 대해 더 많이 다뤄보도록 하겠다. 

 

 우선, 재택근무는 현재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는 펜데믹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들이다. 이제는 스터디나 회의도 온라인으로 하고 회사 업무까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코로나로 인해서 이 방법이 대중화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이 방법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곳이 꽤나 많았다. 온라인으로만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가 실제로 존재했고 심지어 잘 되기까지 했다. 또한,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안다는 미래형 대학교 '미네르바 대학'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캠퍼스가 없이 4년 동안 7개국을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그곳도 컨택트가 아닌 언컨택트와 컨택트가 결합된 공간이 된 것이다. 이처럼, 언컨택트는 사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 차츰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재택근무 흡수력이 여태껏 저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마주 보며 회의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야근하고, 회식하며 친밀하게 어울려 일하는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조직 문화에선 재택근무를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봤다, 자신들이 계속 해왔던 방식이 익숙하고 검증된 것이다 보니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원격근무와 재택근무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음에도 기업들이 적용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다.

관성을 깨는 건 늘 어렵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란 말은 구호로 쓰긴 좋지만, 막상 실행으로 하기엔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 대기업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변화, 혁신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조직 문화를 바꾸는 작업에선 소극적이었고, 기존 직원들의 저항도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놀라운 트리거가 되었다."


 앞으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국의 기업들이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없을 테니까. 앞으로는 홀로그램으로도 회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시공간적 제약을 없애고 굳이 회사에 출퇴근하지 않고도 충분히 집에서 근무가 가능해질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앞으로 이런 방식을 더 선호할 것이며 그들은 미래 기술에 기성세대보다 쉽게 발맞춰 갈 것이다. (사실 시대를 맞춰 살아가는 것은 나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오랜 것을 버릴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한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격근무를 위해서는 사실 시간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관리 또한 필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고립감이나 외로움에 빠지면 사실 회복되기 힘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멘털 관리와 시간 관리를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 앞으로 더 성장할 키워드다. 2020년 기준으로 1170명의 직원이 70여 개국에서 일하는 기업 '오토매틱'은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모이고, 나머지는 각자가 선택한 공간에서 일한다. 홈오피스를 빌리는 비용, 카페에서 일할 때 마시는 음료까지 회사에서 모두 지원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운영을 해도 대형 사무실을 운영하는 비용보다 적다고 하니, 이만한 가성비가 또 없는 것 같다. 직원들은 해변에서든, 카페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사무실 없이 원격근무만 해도 비즈니스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굳이 옛날 방식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에서는 '방콕, 호치민의 어느 카페나 공유 오피스에 앉아서도 실리콘밸리 회사의 직원일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참 재밌고 좋았다. 원격근무로 인해 출퇴근 시간의 낭비도 없애고(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거리가 매우 크다. 그리고 서울은 집값이 비싸 집을 구하기도 어렵다.), 대면 스트레스도 줄이고, 사무실 공간 비용도 줄이고, 도시의 밀집 화도 완화되고, 좋은 점들이 꽤나 많다. 물론, 좋은 점만 있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늘어날 것이고, 또 그에 맞는 다양한 비즈니스들도 생겨날 것이다. 

 

 또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집과 돈, 인맥과 친구, 소비와 교육까지 모든 면에서의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 옥스퍼드 마틴스쿨의 교수가 발표한 '고용의 미래'에 따르면, 저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것은 내가 책 '에이트'에서 보았던 직업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었다. 전문직들의 위기가 닥쳐오고 로봇에 대처되갈 것이며, 매뉴얼화시킬 수 있는 업무나 조직에 기댄 일자리들은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 말이다. 반면에 개인의 역량이 요구되는 크리에이터들의 몫은 더 늘어날 것이다. 로케이션 인디펜던트와 디지털 노마드에 유리하기도 하고 말이다. 여태껏 기성세대가 바라보았던 좋은 직업이 과연 우리 시대에 좋은 직업일까? 아니, 존재하기나 할까?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한 번 깊게 해봐야 하는 시기가 왔다. 

 


 "세계적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가 쓴 [코끼리와 벼룩]에선 코끼리에 비유되는 대기업 직장에서, 벼룩에 비유되는 프리랜서 중심으로 고용 문화가 재편되는 것을 다룬다. 대규모 조직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이미 2001년에 한 것이다....

우리가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집을 사서 정착했던 건 우리의 본능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고용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사회적 욕망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평생직장을 원치도 않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 국가적 장벽도 사라지고, 언어적, 문화적 장벽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면 이곳이 지금 서울인지, 뉴욕인지, 치앙마인지, 사무실 책상인지, 카페인지, 달리는 기차 안인지 구분도 안 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우린 전 세계 어디든 접속하고, 전 세계 누구 와든 연결된다. 언컨택트의 시대는 오히려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기회와 컨택트 하게 만든다.'

-언컨택트 123page-


  이처럼 사회는 변하고 시대도 변한다. 나는 그 시대의 벽동 위에 서 있다. 그럼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무조건적으로 기성세대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고 또 그렇다고 그들의 조언을 모두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고, 나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대규모의 기업이 없이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프리랜서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미리 준비해두자. 우선,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시간관리, 자기 관리 능력, 멘털 관리 능력은 기본 중 기본이다. 운동으로 그 멘털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체력과 건강이 없으면 그 무엇도 수행해낼 수 없으니까. 

 

 그리고 필요한 능력은 영어 실력이다. 영어 하나로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 회화와 스피킹, 라이팅, 리딩 실력 모두 길러두자. 영어는 그냥 평생 가져가야 하는 과제다. 언어는 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그냥 꾸준히 습관화 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 기술에 늘 관심을 가지며 예민하게 반응하자.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나도 변화해야 한다. 내 실력이 나의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잊지 말고 내 실력 기름을 1순위도 두자. 이제 더 이상 인맥이나 학력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난 나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코로나 19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들은 전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온라인 수업을 경험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참 많이도 바꾸어놓은 것 같다. 물론, 좋지 않게 바꾸어놓은 것들도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순기능도 언제나 그랬듯이 존재한다. 사람들과 너무 많이 부딪히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한국인들의 삶에 조금은 여유가 생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양면성인 것 같다.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분명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나는 이 책에 [홈스쿨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가 바로 그 홈스쿨링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학교 교육에 문제점과 의문을 갖고 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고등학교 시절의 반을 보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너무나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어른들은 날 걱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안쓰럽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난 상관없다.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면 끝나는 일이니까.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사는 사람을 볼 때 조금의 불안감과 질투를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솔직히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전부고 그것이 맞다고 믿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의견에 그렇게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는 내 인생을 나에게 맡기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 살아가면 될 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말에 내 삶을 버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홈스쿨링에 관한 주제는 여느 주제들보다 정말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영국, 미국, 핀란드는 홈스쿨링이 합법이며 활성화 돼있다. 하지만 독일, 스웨덴처럼 불법인 나라도 존재한다. 국가별 시각차가 존재하지만, 나는 그냥 홈스쿨링을 하고 싶어서 자퇴했다기보다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해주지 않아 제대로 된 교육을 찾아 떠난 것이다. 물론, 교육방식의 변화는 시스템적인 문제며 구조적 문제이기에 한 번에 바뀌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익숙한 관성이 지닌 저항력 때문에 잘 바뀌진 않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 반드시. 정보 전달과 습득은 기계가 더 잘한다. 컴퓨터가 훨씬 인간보다 그 능력은 뛰어나다. 질문과 토론, 비판과 문제 제기 등을 얼마나 잘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미래 역량인데, 그것에 대한 교육은 시스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무크(MOOC)로 외국에서는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사이트가 많이 존재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물론이고 해외의 유명한 대학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원하면 돈을 지불하고 수료증이나 학위까지 딸 수 있다. 이름바 평생 교육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평생 배우고 공부하며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야 하는 시대다. 우리나라도 뭐 사이버 대학이나 k-mooc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활성화 됐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이런 시스템들을 잘 이용해 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다.

 

 언컨택트 시대에 대학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현재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오프라인 수업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등록금을 반환해 달라고 시위까지 하려 나섰을까. 이러다보니 휴학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늘고, 시간을 손해보는 학생들 또한 늘어났다. 외국으로 유학을 간 학생들은 주거난까지 겪게 된다. 사실 나도 이번년도에 워킹홀리데이나 여행을 염두해두고 있었는데 갔으면 큰 일날 뻔 했다.

 


"가뜩이나 대학 산업은 쇠퇴하던 중이었다. 국내에서도 향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거나(그보다 더 많이 사라진다는 우울한 예측도 있다.) 하는 얘긴 꽤 오래 전부터 나왔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대학을 1088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1109년에 설립된 파리 대학, 1167년에 설립된 옥스퍼드대학과 1209년에 설립된 케임브리지대학 등, 800~900년 전부터 존재하던 대학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동안 변화를 하긴 했지만, 과거 대학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대학 교육에 대한 무용론도 21세기 들어 계속 제기된다. 특히 IT산업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더더욱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늘었다."

 

"...2018년 애플이 미국에서 고용한 직원의 절반 정도가 4년제 학위가 없다는 얘기를 했다. 4년이란 시간과 비싼 등록금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의 돈과 그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질을 갖추는 데 투자 하는 게 낫다는 의미인 것이다."

-언컨택트 155page-


 요즘 시대에 대학을 가는 것은 학위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학문 연구가 아니라 완전히 취업이나 사회 진출을 위해 자격증처럼 필요해지게 되버렸다. 하지만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은 특정 직업에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책은 말한다. 물론, 교육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저 대학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그저 자격증처럼 여겨지게 되는 대학 학위가 과연 4000만원의 돈과 4년의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기성 세대에게는 그저 대학 졸업장으로 평생 떵떵거릴 수 있고 취업에 써먹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다 다르다. 계속 교육받고 성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나는 이 책 덕분에 내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를 믿고, 계속 하루하루 꽉 채워가며 살아야겠다. 이런 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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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요즘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과 소상인들까지 모두 코로나 이후의 시대인 '포스트 코로나'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 그 시대를 잘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고마운 책을 하나 읽어보았다. 2020년 4월 말에 나온 책인데, 나는 이 책을 5월 초쯤 구매해 5월 한 달간 읽어보았다. 이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을까, 아니면 그냥 볼까 고민하던 찰나, 밑줄을 쳐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 많이 나와 밑줄을 많이 치면서 읽게 되었다. 

 

 우선 나는 이 책을 김미경 강사의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작가 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공감이 많이 가서 자연스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언컨택트의 작가 김용섭 소장은, 이제 더 이상 인맥이나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이 시대에 발맞춰 가야 한다고 말한다. 컨택트 시대에 살던 우리들은 이미 언컨택트 시대를 접했으며, 앞으로 언컨택트는 더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 나는 비즈니스, 경제, 경영, 마케팅에 대해서도 관심이 좀 생겼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며 민주주의다. 자본주의의 끝인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함께 발달해왔기에, 자본에 대한 공부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경제 활동을 하게 될 텐데, 내가 발 담글 경제에 대해 알고 발을 담그는 것과 모르고 담그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자본과 비즈니스에 대한 공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관련된 책을 읽으려고 하던 중, 이 언컨택트라는 책이 비즈니스와 관련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왠지 모를 성취감이 내 주윌 맴돌았다.


이 시대에서 참 반가운 것은, 내가 바라는 이야기들이 꽤나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Z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고(디지털 원주민), 언컨택트 시대의 교육에 대해서도 다룬다. 물론, 비즈니스 책이기에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많이 다룬다. 이 책의 목차는 전체적으로 3개로 나뉘는데,

 

1. 일상에서의 언컨택트

2. 비즈니스에서의 언컨택트

3.  공동체에서의 언컨택트

 

로 나뉜다. 챕터 1, 일상에서의 언컨택트에서는 인간의 본능인 성욕과 사랑, 소통 등에 대해서 다룬다. 과연 코로나가 우리의 삶에서 성욕을 억제시킬 수 있는가? 또는 미래 시대의 성욕은 어떻게 다뤄질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데, 영화 HER을 예시로 로봇과의 사랑이 가능할 것인지, 결혼의 가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에서도 그런 소재로 된 이야기가 하나 나온 적이 있다. 가상현실의 발전으로 인간은 정말 현실인 듯한 세계에서(하지만 가상 세계다.) 친구와 게임을 하고 실제로 대화도 나눈다. 물론, 게임 속에서는 게임 속 캐릭터로 변신한다.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 어쩌면 미래 시대에는 힘든 현실을 잊게 해 줄 가상현실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며 말이다. 아무튼, 그 블랙 미러의 주인공들은 그냥 친구 사이인데, 게임 속에서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 둘은 모두 남성이었으며, 한 명은 가정이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관계를 한 것도 아니고 게임 속에서 한 것이지만 그 둘은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경험이 너무 강해서 잘 잊히지 않는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 주며 새로운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또 거기서 해답을 찾아낼 것이지만, 해답을 찾아내기 전에는 수많은 질문과 고민과 토의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나의 입장을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의 성욕은 아주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가상현실에서 푸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친한 친구사이일 경우, 자신이 불편하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고 말이다. 그냥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로봇과 가족이 되는 것도, 어쩌면 그저 영화 속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정말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지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잘 설계가 된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인간 남자 친구, 여자 친구보다 로봇 연인을 원할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불편해진 지금, 악수와 비주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과연 코로나가 인간의 오랜 습관인 악수와 비주를 못하게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거의 YES다. 요즘 사람들은 악수를 하는 대신의 주먹을 맞대는 인사를 한다던지 팔꿈치로 인사를 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거의 고개를 숙이는 인사나 손을 흔드는 인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사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변화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비주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습관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그 인사를 그만해야 한다는 것에 그들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사실 비주를 그대로 할 테지만, 코로나가 유럽에 전역으로 퍼진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챕터 1에서, 회식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이 작가님이 트렌드 분석가라 그러신 지 시대 변화에 확실히 민감하고 예민하신 것이 드러나서 굉장히 좋았다. 솔직히 Z세대로서, 이렇게 우릴 이해해주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다들 우리를 별종으로 바라보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이렇게 확실하게 우리가 가진 생각들을 말하는 책은 흔치 않다. 기성세대들의 생각과 신세대들의 생각이 확연히 차이 나는 것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기성세대는 집단주의와 인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신세대들은 대부분 개인주의를 받아들이며 자라왔고 인맥보다는 능력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에 들어오면서 기성세대의 식구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시작했다.... '꼰대'가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부각하면서 '안티 꼰대' 문화가 급격히 퍼졌다... 1인 가구는 주류가 되었고, 혼밥. 혼술도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언컨택트 67page-

 

"한국 사회가 그동안 타인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한 건 단일민족, 혈연과 나이, 서열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문화 때문이기도 한데, 기성세대에겐 당연했던 관성이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로 갈수록 퇴색되어간다. 혈연, 학연, 지연 중심의 끈끈한 인맥이 퇴색되고, 역대 최저 혼인율, 역대 최저 출생률이 매년 경신되는 중이다. 평생 직장에 대한 환상도 완전히 사라지고, 긱 고용(비정규 근로 고용)이 보편화되며,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끈끈한 위계서열 구조에서 벗어난다. 관계에서의 느슨한 연대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시대다. 지금까지는 대면과 접촉이 중심이자 주류이고 비대면, 비접촉이 보조와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언컨택트 81page-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연결보다는 편리한 단절을 꿈꾸는 시대가 되었다. 솔직히 나나, 내 친구들이나 요즘 친구들은 오지랖을 좋아하는 애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 특유의 남에 대한 간섭이 기성세대에게는 '정'으로 비쳤을지는 몰라도, 요즘 세대에게는 '오지랖'으로 비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택시 기사님이 끝없이 걸어오는 말들이 될 수도 있다. 솔직히 그분들을 이해는 한다. 그 분들 입장에서는 고객과의 대화가 일의 연장선일 수도, 또 힘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요즘 우리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모두 털어놓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냥 조용히 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런 점들을 '언컨 택트'가 대신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냥 어플로 목적지를 적고 돈을 미리 지불하면 그냥 거기까지 가는데 가만히 앉아 가면 되니까. 언컨택트가 참 우리의 삶의 방식을 많이 바꿔놓는 것 같다. 

 

 이 챕터의 마지막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왜 일어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등을 이야기하며 끝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모두 우리의 탓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탓이라고 말이다. 나는 저자의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동안 산업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참 많이도 자연을 파괴해왔다. 어쩌면 지금 코로나 사태는 자연 파괴로 인해서 우리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독 2000년대에 들어서 전염병이 많이 퍼지고, 산불 같은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난다. 이것이 과연 그저 우연일까? 그저 운이 안 좋은 것뿐일까? 아마존에 불이 나고, 호주에 큰 산불이 나고, 국내에서도 많았던 산불들이 과연 우연일까?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책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쩌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선택이 아닌 아주 당연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 지구에서 앞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지구를 위한 생활들을 한다면 인류와 지구가 모두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일단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환경 문제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잘 수행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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