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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e(온드)는 프랑스어로 파도, 물결, 파형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저의 글, 음악, 춤 등으로 사람들에게 파도처럼 다가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틀에 갇힌 것 보다는 야생의 자유로움을 사랑합니다. 한국의 홈스쿨러이며 교육 혁명을 원하고 끄적끄적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며 가사 쓰기, 글 쓰기,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연기, 연극, 뮤지컬도 좋아합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들을 씁니다. Z세대로서 느끼는 글들이 많을 것 입니다. 온드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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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옛 조상들은 자신들이 만든 유교 문화가 많은 후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알까? 진짜 너무 화나고 울컥해서 쓰기도 힘들 정도다. 와, 물론 한국에서 자라면서 좋았던 점이 단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 뭣 같은 유교 문화 때문에 힘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나로서는 진짜... 너무 뭣 같다. 이 문화가. 유교 문화는 어른들의 말은 '무조건' 맞고 공경해야 한다는 문화가 깔려 있는데, 그게 대체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아이들과 청춘들의 꿈과 희망과 비전들을 막아버렸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뭐만 하면 '너 대드는 거야?' 라던지, '너 나랑 해보자는 거야? 시비 거는 거야?', '그래서, 내가 틀리고 네가 맞다는 거야?', '네가 뭔데 날 가르치려 들어? 어른 공경도 몰라?' 이딴 식의 말들을 내뱉는 게 너무 당연한 기성세대들, 그리고 그것을 듣는 게 너무 당연해진 요즘 세대들. 아, 그래서 꼰대라는 말도 생긴 것일 것이다. 자기 말만 맞고, 내가 보낸 세월이 틀리지 않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신세대들의 개성을 짓누르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말들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그래 놓고서 뭐? 창의적인 인재를 바라? 정말이지 양심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그들도 그들이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자기가 한 평생 믿고 살아온 방식이 잘못됐다고 하면 누구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세대는 교차된다. 이건 인류 역사에 있어 아주 당연하고 확실한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한다면 그럼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나는 자라오면서 저런 유교 사상이 깔린 가스 라이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니, 나는 들어온 것이 확실하다. 물론 부모님들께 감사한 것들도 많고 배울 점도 있기는 하지만, 이 점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집에 있으면서 살이 찐 내게 살을 빼라고 이래라저래라 한다던지, 난 이게 정말 이해 안 간다. 이래 놓고 내가 그들에게 몸매에 대해 뭔가를 말하면 상당히 불편해하고 기분 나빠한다. 아니, 솔직히 남 얼굴, 몸매 품평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건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무례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냥 말 건네듯이, 인사하듯이, '너 살쪘네, 빠졌네, 좀 탔네?' 어쨌네 저쨌네. 뭘 그렇게 남의 외형에 관심이 많을까? 알아서 어련히 하겠지. 자기가 살찌면 그건 자기가 가장 제일 먼저 잘 알고 있다. 이미 남들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사회에서 살찌는 게 얼마나 좋지 못한 것인지 배워와서 머릿속에 살 빼야지라는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말하면서, 그걸 정작 자신에게 하면 기분 나빠하는 그 사고방식이 이해가 잘 안 간다. 아니, 부모면 무조건 자식한테 그런 선 넘는 말들을 해도 자식을 위한 거라고 하면 다 괜찮아지는 건가? 정말 그 말을 듣고 자식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혹시나 이 말을 애용하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이 말이 얼마나 웃기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정말 자식을 위한 건지, 아니면 자식을 통한 자기만족인지 말이다.

 

'쪼그만 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네.'

'너 지금 시비 거는 거야? 부모한테? 저 싹수없는 것 좀 봐.'

 

 내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자주 들어왔던 말들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말은 했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가 갈 때까지 물고 늘어졌다. 근데, 그렇게 말하고 나면 항상 돌아오는 말은 저런 말들이었고, 결국 '넌 틀렸고 난 맞아.'식의 이야기로 종결이 되곤 했다. 아니, 자식과 부모가 이야기를 하는데 맞고 틀리고 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 애초에 접근방식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자식을 자신의 생각으로 찍어 누르려는 게 보이는데? 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즐겼는데 항상 거기에 부모님은,

 

'춤은 너보다 잘 추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아무리 학교에서 상을 받고 춤 선생님께 인정을 받고 한 이야기들을 해줘도 그냥 '잘했네.'라고 건조하게 한마디 하고는 그냥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내가 춤으로는 잘 되기 힘들거라 섣불리 말하기 일쑤셨고, 나는 그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생각해보자. 난 그때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이 과연 가스 라이팅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잠시 춤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춤이 정말 좋았고 그것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없다. 지금 스무 살이 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추고 있다. 그러니까 혹시나 지금 부모님의 반대나 가스 라이팅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부모님 말 무시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기가 정말 좋으면 부모님 말 들을 필요 없다. 왜? 부모님은 그 감정을 모르고, 춤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거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살아갈 세대 자체가 다를 것이다. 부모님 세대엔 먹고사는 게 먼저였지만, 우리 세대는 자아를 찾아가는 시대라고들 한다.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이야기가 나오는 혁명의 시대와 적어도 30년 전의 이야기가 같을까?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말에 흔들리며 살기에는 나는 충분히 자랐고, 성장했다. 서양에서는 스무 살(만 18세 이상)이면,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30살이 넘어서까지도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동양과 서양이 아마 부모 자식 간의 가치관이 다르고,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등 사상들의 차이에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인터넷으로 인해서 Z세대들은 서로의 가치관들에 대해 많이 접하며 자랐다. 따라서 한 편의 가치관이 아닌, 여러 것들이 겹쳐진 새로운 가치관들이 그들 사이에서 형성됐다. 우리 Z세대들은 또 새로운 세대를 살아가야 한다. 부디, 우리 세대들이 살아갈 세대가 전 세대들이 똥 사지른 것들을 치우는 시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환경 문제들에도 관심이 많아졌는데, 앞으로 환경 개선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구는 하나뿐이니까. 얘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는데, 아무튼, 나는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세대들이 모두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뭣 같지만, 우리 같이 이겨내 보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한국 학생들이 오히려 더 가스 라이팅에 당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진짜 교육 문제 얘기하면 고칠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2018년, 내가 미국에 처음 갔던 해, 나는 정말 내가 보내온 시간들에 대해 매우 화가 났었다. 내가 왜 그런 쓸모없는 교육을 받아야만 했는지 억울했달까. 내가 정말 화가 나는 것은, 내가 한국 교육들에 대한 무쓸모함과 내가 가려는 방향과 맞지 않는 학교 시스템과 교육에 대해 얘기를 할 때면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게 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야.'

 

 하,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선생님. 정말이지, 말이 안 통했다. 참 웃긴 것은 초반에는 내가 그 말을 믿어봤다는 것이다. 그 말을 믿고 어떻게든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매일 똑같이 갇혀서 매일 똑같은 걸 반복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거나 할 시간은 낭비로 여기던 그 학교에서 내가 대체 뭘 찾겠나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매일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들었다. 내가 개성이 확실해질수록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다른 애들과 같아지지 않으면 여기에 속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튀면 눈치를 주기 일쑤였으니까. 어느 날은, 내가 글로 상을 받아서 교장실에 불려 갔는데, 모두가 똑같이 교복을 입고 줄을 서서 받는 거다. 난 그게 뭔가 되게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상을 받을 때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그냥, 뭔가 공장의 제품 중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상장을 들고 반으로 뛰어와 가방으로 상장을 구겨 넣고 안에서 마구마구 구겨댔었다. 

 

'생각하지 말고 외우세요. 여긴 시험에 꼭 나와요.'

'여긴 시험에 안 나옵니다. 볼 필요 없어요. 자 다음 페이지.'

 

 학교에서 아마 지겹도록 가장 많이 들은 말일 것이다. 모든 것이 입시와 시험을 위해 돌아갔다. 나는 내가 거기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없는데 왜 가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가야 되니까 가야 되는 거라고? 그럼 이유가 '그냥'인 것 때문에 4천만 원과 4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거라고? 앞뒤가 안 맞았다. 나는 우선 내 자아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그게 없이는 의미가 없어보였다. 그리고 우연히 좋은 기회로 2주간 미국 LA에 다녀온 이후, 난 가치관에 엄청난 충격을 먹고 2학년 여름 방학, 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 일찍 할 걸. 


오늘 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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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취미, 나의 관심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쓸데없는 삽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들은 다 나의 자산이다. 앞으로, 인류가 앞두고 있는 많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해야 한다. 한 우물을 파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나는 거기에서 다양하게 교류할 수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박스에서 탈출하자! 

 

 나는 이 강연을 보고 정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나는 예전부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면서 거기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강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가진 예술적 영역들을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뮤지컬에 한참 빠졌을 때는 브로드웨이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그곳을 동경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 어른들에게 말했을 때의 반응은 역시나,


"아니, 그걸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거기 가면 교포 애들이 널렸을 텐데 네가 거기 가서 어떻게 걔내를 이기려고?"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왜 그렇게 돌아가려고 해? 그냥 한국의 뮤지컬과를 가서 가면 되는 건데. 넌 굳이 그렇게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

"남들이 그 길을 많이 선택하는 데는 그 이유가 다 있는 거야."

"넌 일반적인 것을 왜 이렇게 거부하니?"


 이 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말들을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경험으로 만든 박스에 나를 가두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박스에서 나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나는 그들이 하라는 방식을 내가 왜 그대로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시대와 내가 살아갈 시대는 너무나도 다를 텐데, 왜 그들의 방식을 내가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은 그 박스에서 튀어나온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며, 때론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은 때론 부러움의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이 부럽게 쳐다봤다는 사실은 곧 그들도 박스에서 나오고 싶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째서 많은 사람들은 박스에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원래 갖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까?

 

 사실 나도 내가 박스에서 완전히 나온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걸터앉아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그 박스에서 튀어나오기 위해 스스로 의식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전의 사고방식들을 전환시키며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내 주변 어른들은 대부분 박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조차 박스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굉장히 답답하고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자꾸 뭔가로 날 가두려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그들은 자꾸 내 꿈을 직업으로 정의하려고 했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했다. 아니, 이것은 고등학교 때부터가 아닌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꿈=직업'이라는 공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공식이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그때 굉장히 충격을 받고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었다. '내 음악, 춤, 연기, 글 등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이다. 그 꿈의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다양해지고 형형색색의 그림으로 갖춰질 나의 꿈들은, 미리 형식을 정해두거나 직업을 정해두거나 하지 않는다면, 더 멋지게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타일러는 이 강연에서 박스에 갇힌 사례 2가지를 예시로 든다.

 

 첫 번째 예시는 '하늘을 날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아이가 원하는 꿈은 '푸른 하늘을 나는 비행기'지만, 사회가 제시한 박스는 아이의 꿈을 '비행기 기장'으로 정의해버린다. 하지만, 비행기 기장과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상당히 다르다. 비행기 기장은 하늘을 날기는 하지만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하늘을 나는 것 외에도 굉장히 매일 똑같은 업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그것이 과연 아이가 원하던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삶이었을까?

 

 또 두 번째 예시는, '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이었다. 그 고등학생은 타일러에게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질문했지만 정작 글은 하나도 쓰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너무 지나친 준비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예시였다.

 

그리고는 타일러는,

 

"기존 세대들이, 기존 방식으로 성공을 했고 또 만들어놓은 박스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박스의 바깥, 다양성의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실험을 습관화하십시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은 실패와 좌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냥 해보면 되는 거다. 굳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해보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에 실패와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험한다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단순히 응원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불가능한 이야기인지, 어떤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지를 지적한다. 또, 그 공식에 맞춰 어느 정도 준비했는지를 평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스스로의 꿈을 지켜야만 한다. 타일러의 이야기를 새겨 들으며, 내 꿈이 누군가의 박스에 갇혀지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는, 꿈이라는 단어가 진로에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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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주위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나 자유로워 보인다는 말을 꽤나 많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그렇게 내가 자유롭다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그걸 말하는 친구들보다는 자유롭게 사는 건 맞다.

근데, 솔직히 그렇다고 맘 편한 건 아니다.

그래서 세상과 부딪히는 것들이 더 많고 책임감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그냥 막연하게 부럽다고 말하는 시선들이나 말들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만큼 마냥 편하지도, 마냥 좋지도 않다.

내가 세상 편하게 사는 것처럼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는 말들을 듣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다.

 

 솔직히, 한국 사회에서 남 눈치 안 보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들 알 것이다.

끝없이 경쟁하고 비교하는 시스템 속에서 우린 얼마나 남 눈치를 보며 튀지 않으려 노력했나.

다른 의견들을 틀렸다고 말하는 사회에 뭘 말할까 싶기는 하지만, 

한 번뿐인 내 인생인데 남 눈치만 보면서 살기엔 너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나는 가끔 내가 한국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싫을 때가 있다.

(아니, 어쩌면 자주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맘 편하게 우리나라 최고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았을까.

수많은 국뽕 채널들이 불편한 이유도 그 때문일까.

한국 사회에서 나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고, 이단아 같았다.

그냥, 잘못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계속해서 느꼈다.

 

 조금만 튀면 재수 없다고 까고, 조금만 내 길에 확신이 있으면 시기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다들 자신의 길에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걸까. 다들 가라는 대로만 왔어서 그런 걸까.

나까지 그런 사람들처럼 돼가는 기분이었다.

학교 학원 집 또는 대학 취업 결혼, 이런 공식들을 싫어하는 게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회가 기형적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다르게 태어났고 다르게 자랐다.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똑같을 수 없고,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대체 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싶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아주 안타깝게도 집에만 있지만,

언젠가는 꼭 넓은 세상 속에서 나만의 관점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엿같은 한국의 유교문화와 꼰대 문화가 싫은 것이고,

수직관계와 다른 것을 틀린 취급하는 집단주의가 싫은 것이다.

 

 그럼 한국 나가라고? 응, 돈만 있으면 이미 나가서 집 차렸다.

그런 말들 지긋지긋하게 들었고 나도 돈만 생기면 나가고 싶은 심정이니 굳이 말 안 해도 된다.

 

 그리고 이런 말 하나 해주고 싶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절대 우리나라에서 창의적 인재는 나올 리가 없다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을 때 대든다고 하니, 

솔직히 우리나라에 가망이 있는지도 의심이 되는 시점이다.

 

 몇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다고 했을 때,

정말 아무도 손을 안 들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게 다 어디서 온 걸까?

질문이 왜 사라져버린 걸까?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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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을 먹다가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결혼 때문에 대학 졸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5년 과정을 거의 마치고 졸업 시험만 보면 되는 거였는데, 왕할머니가 엄마가 결혼할 거면 공부를 뭐하러 하냐고 그만 때려치우라고 했다고 한다. 세상에나. 이게 1990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솔직히 시대 차이라곤 하지만 당장 내 엄마 세대가 이렇게 부당한 차별을 겪었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그리고 엄마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생겨 아버지가 아프실 때, 남자 형제들은 돈을 내지도 않는데 대학 갈 돈을 병원비로 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게 과연 왜 그렇게 된 걸까. 누군가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그 마음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그리고 대학까지 나온 외삼촌들은 왜 돈을 내지 않았을까. 솔직히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우리들에게는 너무 부당하고 차별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시대에 살았으니 나 같은 우리 Z세대들을 볼 땐 참 여러 감정들이 들 것 같다. 부럽기도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교육을 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공부를 더 많이 하다 보니,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결혼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내게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엄마 친구들만 해도 결혼을 하고 나서 대기업을 퇴사하거나 하는 일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 되지 않으니까. 아, 바뀌어야 한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성별은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보니 그 성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천적인 요소로 인한 차별과 혐오는 당연히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언젠가 나도 아빠한테 차별적인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어느 날 아빠에게 '내가 만약 아들로 태어났으면 어땠을 거 같아?'라고 질문했었는데, 아빠의 대답은 '더 지원을 많이 해줘야지. 우리 집 기둥이니까.'였다.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말을 하셨고 그게 왜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아빠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빠는 날 열심히 키워주셨고, 사랑해주시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대단히 가부장적인 생각이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지금은 2020년이다. 제발, 시대에 맞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아빠 입장에서 그게 쉽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아빠는 다른 세대를 살았고 머릿속 데이터 베이스가 나와는 다를 테니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사람들은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그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개인이 변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집단이라고 다를까?

 

 여성과 남성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성이다. 물론, 가끔가다가 여성과 남성이 아닌 간성인 사람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나뉜다. 우리는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해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지금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나뉘게 되었고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쉽지만 문제 해결에는 큰 힘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다른 이야기다. 범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받은 차별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고, 또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두 성별 모두 생물학적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성별 하나 때문에 무엇을 하는데 제약이 생기거나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생물학적 힘이 필요한 군인이나 경찰 등의 직업종은 여성이 개인적으로 더 힘을 기르거나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제도 면으로 조금 더 융통성 있게 만들던가. 현장에서 뛰는 것보다 지시를 내리고 관리하는 일을 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소수이기는 해도 생물학적 힘이 강하고 근육도 많고 체력적으로 충분한 여성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내 말은,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한국이나 세계나 아직 먼 것 같은 것은 사실이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인간은 가부장적 세계 안에서 자라왔고, 그것이 맞다고 믿어왔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리 긴 역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우리는 바꿔나가야 한다. 서로 부담을 갖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아직 더 알아가야 하고 공부해봐야 한다. 그저 누구를 혐오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생겼는가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양성평등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궁리해야 한다. 양성평등은 이제 우리 세대가 짊어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우리가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대가 바뀜으로써 생활양식도 바뀌어나갈 것이고, 우리는 또 그에 맞는 우리만의 생활양식과 방법을 만들어 갈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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