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요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는데,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챕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한국을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의 한국의 상황을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먼저 접하고 여러 책들과 뉴스들로 익혔을 뿐이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터였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있는데,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챕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한국을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의 한국의 상황을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먼저 접하고 여러 책들과 뉴스들로 익혔을 뿐이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터였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 남한은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산업적으로 성장기였을 때 태어난 우리 부모 세대들은 지금보다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많았으며, 취직도 보다 잘 되었다. 그렇기에 아마 그들이 우리를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세대 간의 불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산 세대와 우리가 사는 세대는 확실히 다른 세대고, 다른 시대니까.
우리나라가 급성장을 했기 때문일까, 한국하면 외국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빨리빨리'가 크다. 외국인 패널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빨리빨리'문화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 문화는 과정을 무시하기 쉬우며, 그 안의 여유는 사치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냥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 바란다. (물론, 급성장 시대에는 이 문화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게 미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지나든지 이미 몇 년이나 지났고, 그때의 아이들과 현대의 아이들은 굉장히 다른 교육을 받고 있으며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2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3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나이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워왔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뭐, 다들 알겠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학생 때는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대학 가면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애 낳아 학교 보내고, 애 학교 보내면 취직시키고, 좋은 곳 취직시키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마치 누가 정해놓은 규칙처럼 선명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규칙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자란 환경부터 생김새까지, 흥미부터 재능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이런 규칙에 얽매여 있고 억압돼 있을까? 왜 우리 스스로를 이런 틀에 맞추지 못해 안달일까?
그리고 그 틀에 맞추지 않은 사람들을 실패자로 보며 혀를 차게 되는 사회가 되었을까? 초집단주의 성향인 문화 때문일까? 아니면 급성장으로 자신의 삶이 맞다고 정의 내린 기성세대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 때문일까? 대체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당장 나의 자매나 형제를 봐도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성격, 성향, 관심사까지 모두 다르다. 가족부터 친구까지 다른 구석들 투성이인데, 이런 70억 인구가 과연 같은 사람이 한쌍이라도 존재할까? 도플갱어가 실제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우리는 같아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하며 사는 것일까?
옆 나라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또 '오지랖'을 가졌다. 그건 아마 관심과 친절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한 한국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리라. 누군가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이 정당하다는 듯 변명한다. 거슬린다는 둥, 왜 남들 가만히 있는데 너만 그러냐는 둥, 나대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으라는 둥으로 말이다. 교실 환경만 봐도 질문하는 아이가 있으면 다들 눈치주기 바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이었지만, 깎이고 도려져 같은 모양이 돼버리고 만다. 개성없고 형태 없는 그냥 동그라미가 되고, 그 동그라미가 되면 축하를 받는 기이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실이 분통하고 피곤한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해외를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인간이랄까.
우리는 조금의 방황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찾아갈 방황이 필요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볼 방황의 시간이 필요하다. 방황한다는 것은 찾는다는 것이 있다는 말이고, 찾아낼 것이라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뜻이고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자신의 꿈의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방황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금기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돼버리고 만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방황을 허락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방황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청춘들이 만들어낼 하모니는 정말이지 아름다울 것이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Z세대의 책 리뷰. (0) | 2020.07.21 |
---|---|
우리는 모두 코스모스다! 저자 칼 세이건을 그리워하며.. (0) | 2020.07.17 |
코로나 이후의 세상, '언컨택트(Uncontact)' 책을 읽고 : ⓷. 공동체에서의 언컨택트 (0) | 2020.06.02 |
코로나 이후의 세상, '언컨택트(Uncontact)' 책을 읽고 : ⓶. 비즈니스에서의 언컨택트 (0) | 2020.06.01 |
코로나 이후의 세상, '언컨택트(Uncontact)' 책을 읽고 : ⓵. 일상에서의 언컨택트 (0) | 2020.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