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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Z세대의 책 리뷰.

온드ONde 2020. 7. 21. 22:5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 목록에 오르는 작가인 동시에 인터뷰나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은둔을 자처하는 작가. 체코 출신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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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니체의 영원 회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데, 나는 거기에서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영겁의 시간동안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내가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일회성이며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큰 무게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현재 내가 가벼움인지 무거움인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가벼움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종교도 없고 사후세계를 믿지도 않으며, 그것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 끝나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행동 하나하나에 무거움을 더하면 난 편하게 살지 못할 것 같다. 그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 내가 작은 나쁜 짓을 하는 것조차 눈을 부릅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인데 어떻게 좋은 행동만 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상당히 경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은 가벼움이나 무거움 두개로 구별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인생의 회귀와 존재 의미에 대해 한 번 쯤 철학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소통과 인간 존재의 상관관계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소통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 인간은 소통을 갈구하며, 자신의 좋은 점들을 나누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을 흡수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sns나 유튜브가 인기 있는 것도, 아니 그냥 tv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는 산물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관점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소통이 정말 소통인지, 아니면 그저 남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는 마음에,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만들어낸 또 다른 나와의 소통인지 말이다. 현대인들, 특히 gz세대는 sns에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나 그런 곳은 대부분 현실과는 다른, 현실에서도 굉장히 하이라이트인 부분만 편집해서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과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은 소통이 필요한 동물이지만, 현재 sns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통은 뭔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채로 서로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보며 의미없는 말들이나 짓껄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일 뿐이라 생각한다. 

 

 

3. 고전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터라, 이 작품을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 작품 자체가 쉬운 작품은 아니라 그런지, 시점이 자꾸 바뀌어서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점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옛날 소설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여성 혐오적인 표현들이 많았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2020년을 살아가는 Z세대로서는 상당히 불편함을 많이 느꼈는데, 이건 시대적 배경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신경 안쓰고 읽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심한 구절이 나오면 한 박자 쉬고 읽어야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이라면 한 번 주의를 하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4.

키치

[ Kitsch음성듣기 ]

키치라는 용어는 그것이 지칭하는 개념처럼 매우 근대적인 것이다. 키치는 1860년대에서 1870년대 사이에 뮌헨의 화가와 화상의 속어로 사용되었으며, 하찮은 예술품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910년대에 이르면 느슨하고 널리 유통되는 호칭으로서 국제적인 용어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키치 [Kitsch]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이 소설 속에서는 키치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단어가 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라고 한다. 나는 사실 이 단어를 원래 알고 있었다. 바로 뮤지컬 엘리자벳의 키치라는 넘버에서부터 알게 됐었는데, 그때는 사실 키치라는 뜻을 잘 모르고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키치는 하찮은 예술품을 가르킨다고 지식백과에 나와있는데, 사실 19세기의 대중 문화 예술이나 대중 그림들을 뜻했다고 한다. 그때는 뭐 대중적인 것이 천박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해석이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키치, 참고 자료.